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슈트라우스 2세 (문단 편집) == 사후에도 이어지는 인기 == 슈트라우스가 19세기의 거의 끄트머리에 세상을 뜨면서 '[[벨 에포크|좋았던 시절]]의 종말' 이라는 아이콘으로까지 거론됐는데, 실제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왈츠를 비롯한 빈 춤곡의 인기는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. [[제1차 세계대전]]과 [[세계 대공황]] 등 치명타도 있었고, 미국에서 들여온 [[재즈]]나 [[블루스]] 등 새로운 오락거리의 영향력도 큰 위협 요소였다. 하지만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하던 사교계에서 여전히 슈트라우스 왈츠는 인기곡이었고, 무도회 뿐 아니라 일반 공연장에서 감상하기에도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옛 시절의 영화를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떡밥이었다. 심지어 [[나치]]의 오스트리아 병합 후에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슈트라우스의 춤곡들이 악용되기까지 했는데, 하마터면 나치는 이 일로 망신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(무슨 소리인지는 '혈통에 관한 비화' 항목 참조). [[미국]]에서도 독일에 병합되기 전의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모토로 슈트라우스 왈츠를 내세웠는데, 할리우드의 빵빵한 자본과 막대한 인력을 들여 'The Great Waltz(1938)' 라는 슈트라우스 전기 영화를 제작할 정도였다. 1941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관현악단인 [[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]]가 슈트라우스 가족들의 작품 위주로 개최하는 [[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/신년음악회|신년음악회]]를 시작했고, 지금도 클래식 음악회 역사상 유례없는 인기몰이를 하며 이어지고 있다. 방송과 영화의 발달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도 심심찮게 인용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, [[마지막 황제]]의 무도회 장면 같이 나름 어울리는 것 외에도 다종다양하다. [[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|모차르트]]와 함께 오스트리아로 음악 관광을 오는 이들에게 중요한 셀링 포인트고, [[산의 나라, 강의 나라|오스트리아 국가]]를 모르는 외국인은 많지만 '아름답고 푸른 도나우' 왈츠는 거의 다 안다는 점을 강조하곤 한다. 오스트리아의 오페라극장들에서는 12월 31일 밤이면 어김없이 오페레타 '박쥐' 를 상연해 한해를 끝마치는데, 이웃 독일과 [[스위스]]에서도 종종 벤치마킹하곤 한다. 1980~90년대에는 물량공세로 유명한 클래식 음반사 [[낙소스]]의 [[듣보잡]] 레퍼토리 전문 서브레이블 '마르코 폴로' 에서 총 52장의 슈트라우스 작품 전집 CD 세트를 제작해 [[대인배]]이자 [[용자]]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. 오페레타 등 무대 작품은 제외한 것이라 엄밀히 따지면 전집은 되지 못한 물건이지만, 지금도 이 기록에 재도전하는 음반사는 찾아볼 수 없다.[*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역시 거의 전집을 발매한 동생 [[요제프 슈트라우스]]와 [[프란츠 폰 주페]]등도 동일하다.] [[파일:external/a2.tvspielfilm.de/2445891,mImnab2HXXN3UIAbLZQw3fOn7LyxpEH+PoF7QOkkNfrfisgdcUFN3MWCxUQk6IA82ddWFiO498qBmS_rhNGDAA==.jpg]] 19세기 유럽 음악사를 풍미했던 슈트라우스 일가를 다룬 TV 드라마 <슈트라우스 왕조>(Die Strauß-Dynastie)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. 배우는 스티븐 맥간(Stephen McGann). 가문 음악가들 중에서 단연 최고인 만큼 당연한 일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